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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구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품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는 단순한 전쟁 영화나 역사극을 넘어, 인간성과 도덕, 그리고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을 그리는 깊이 있는 예술 작품이다. 흑백 필름의 서늘한 톤 속에서 피어오르는 한 점의 붉은색 코트, 전쟁터보다도 더 잔인했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기적처럼 존재했던 한 기업인의 선택. 이 영화는 보는 이의 영혼을 침묵하게 만들고, 고개를 숙이게 한다.『쉰들러 리스트』는 실제 인물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 앞에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지켜냈는지를 증언하는 작품이다.
1. 줄거리 요약 – “목숨의 값은 얼마나 될까”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된다. 독일 출신의 실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목적만으로 크라쿠프에 정착해 유대인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고용해 에나멜 공장을 운영한다. 처음에는 단지 사업적인 계산이었지만, 유대인들의 비참한 현실과 잔혹한 학살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의 내면은 조금씩 변화한다. 나치의 친위대 장교 아몬 괴트는 유대인 학살의 선봉장으로, 끊임없이 그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인물이다. 그의 잔혹함을 옆에서 지켜보며 쉰들러는 점차 그와는 반대되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고용한 유대인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며,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그는 1,200여 명의 유대인을 구하는 데 성공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나치당원으로 체포되지만, 자신이 구한 유대인들의 편지 덕분에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그의 무덤 앞에 실제로 구출된 유대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돌을 올리는 장면은 세상의 모든 증언보다 깊은 울림을 남긴다.
2. 인물 분석 – 악과 선,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오스카 쉰들러 (리암 니슨 분)
초반에는 기회주의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인간을 지키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의 변화는 어떤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눈앞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도덕적 본능에서 비롯된다.
* 아몬 괴트 (랄프 파인즈 분)
괴트는 이 영화의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냉혈하게 유대인을 사살하며,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쉰들러와 함께 웃고 식사를 나누기도 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드문드문 드러내는데, 이 점이 오히려 그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 이츠하크 스턴 (벤 킹슬리 분)
쉰들러의 회계사이자 양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쉰들러의 진심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를 도와 유대인들을 명단에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츠하크는 영화 전체에서 이성적인 판단과 휴머니즘을 대표한다.
3. 영화적 장치 – 흑백 속 붉은 코트, 그 상징성
이 영화는 대부분 흑백으로 제작되었지만, 유일하게 컬러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한 어린 소녀가 입은 붉은 코트. 그녀는 쉰들러가 학살 현장에서 본 유대인 아이였고, 나중에 시체로 다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쉰들러의 양심을 일깨우는 결정적인 순간이며, 관객들에게도 더할 수 없는 충격을 준다. 붉은 코트는 생명, 무고함, 희망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무력한 죽음을 암시한다. 스필버그는 이 붉은 색을 통해 전쟁 속에서 잊혀지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강조한다.
4. 감상과 해석 – “선택받지 못한 이들의 침묵”
『쉰들러 리스트』는 단순히 구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쉰들러가 구한 1,200명의 사람들만을 본 것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수백만 명의 유대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아이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사라져간 사람들의 존재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쉰들러는 마지막에 오열하며 말한다. “이 반지 하나만 팔았어도 한 사람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이 장면은 모든 관객의 가슴을 찢는다. 그는 세상을 구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구하지 못한 수많은 생명 앞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성이다.
5. 역사와 영화 – 실화 그 너머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 쉰들러는 전쟁 후 오랜 가난 속에서 살다 독일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존경받았다. 그는 나치당원이었지만, 1,200명을 살린 인도주의자였다. 그의 무덤은 예루살렘에 있으며, 그를 기리는 유대인들의 방문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후 홀로코스트 기록보존 재단(Shoah Foundation)을 설립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수집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상업영화가 아닌 역사의 증언이며,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다.
6. 쉰들러 리스트가 남긴 유산
『쉰들러 리스트』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상보다 그 영화가 만들어낸 변화와 기억의 힘이다. 영화가 끝나고 흑백 화면에서 컬러로 전환되며, 실제 생존자들과 배우들이 쉰들러의 무덤에 헌화하는 장면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이 이야기는 실화였고, 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