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남자”
이 수식어는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을 설명하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가 만들어낸 영화는 단순한 오락 이상의 것이었다. 한 편의 영화가 세계인의 상식이 되고, 문화가 되며, 심지어 역사가 되었다. ‘죠스’, ‘ET’,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쥬라기 공원’… 영화 제목만 나열해도 사람들의 표정이 변한다. 그는 단순히 ‘흥행 감독’을 넘어, 현대 영화의 기틀을 만든 창조자이자 이야기의 연금술사였다.
1. 유년기의 외로움이 만든 이야기의 씨앗
스티븐 스필버그는 1946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외로움'과 '낯섦'을 친구 삼았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고, 아버지는 전자공학자였지만, 스필버그는 예술적 감성을 홀로 탐험해야 했다. 그의 부모는 자주 다투었고 결국 이혼했다. 그 외로운 시기를 견디게 해준 것은 작은 8mm 카메라와 상상력이었다. 스필버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출연시킨 단편 영화를 찍으며 점점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키워갔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영화 학교에 떨어졌다는 점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과에 낙방한 그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롱비치 캠퍼스에서 공부하면서도 포기를 몰랐다. 결국 NBC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한 그의 영화 인생은, 한 편의 단편 영화 'Amblin’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 단편을 계기로 그는 유니버설과 계약하며 헐리우드에 입성했다.
2. 영화사의 흐름을 바꾼 ‘죠스(Jaws)’와 블록버스터 시대
1975년, 스필버그는 죠스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고작 28살이던 그는 제작비 초과와 기술 문제로 촬영이 지연되던 이 작품을, 스릴 넘치게 완성해 내며 첫 ‘블록버스터’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죠스는 개봉 첫 주에 박스 오피스
를 장악했고,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해양의 낯선 세계를 리얼하게 결합한 이 영화는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여름 대작 영화’라는 마케팅 전략이 이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이는 곧 스타워즈로 이어지며, 할리우드의 산업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3. 인간성과 상상력의 결합: 스필버그 영화의 핵심
스필버그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시각효과 때문이 아니다. 그는 보편적 감정에 천착하는 이야기꾼이다.
1982년작 E.T. 는 단순한 외계인 영화가 아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 생명체가 보여주는 우정과 이별의 서사는 많은 관객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외로운 소년 엘리엇과 E.T. 의 교감은,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외로움과 상처를 투영한 듯 깊고 진실되다. 또한 쥬라기 공원은 단순한 공룡 오락물이 아닌, 인간의 과학적 오만함과 윤리적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다. ‘할 수 있다고 해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21세기 과학의 방향성을 묻는 근본적 사유였다.
4. 쉰들러 리스트: 스필버그의 인간 선언
1993년, 그는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를 발표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다. 오스카 쉰들러라는 실존 인물이 홀로코스트의 광기 속에서 유대인 1,200명을 구해낸 실화를 기반으로, 인간성과 양심, 그리고 회개의 메시지를 담아낸 영화 이상의 기록물이었다. 스필버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후 자신이 번 돈으로 유대인 학살 관련 교육 재단까지 설립했다. 이 영화는 그에게 있어 영화적 성취가 아닌 도덕적 사명감의 결과물이었다.
5.‘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는 전쟁영화의 형식을 완전히 뒤바꿨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에서 펼쳐지는 20여 분간의 오프닝은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사실적이었다. 피 튀기는 전장의 참혹함, 카메라의 흔들림, 군인의 절규와 혼돈은 관객들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힘은 그 이후다. 스필버그는 한 명의 생명을 위해 몇 명이 희생되는지, 그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웅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이 중심에 있었다.
6.SF와 판타지에서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
스필버그는 기술에 대한 감각도 뛰어났다.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SF 작품에서도 그는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를 탐험했다. 특히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예측 범죄라는 설정을 통해, 자유 의지와 통제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디지털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그는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스토리텔링에 통합한 거장이었다.
7. 이야기꾼, 그리고 프로듀서로서의 스필버그
스필버그는 감독일 뿐 아니라 제작자, 스토리텔러, 기업가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그는 1984년 ‘앰블린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했고, 1994년엔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DreamWorks)’를 설립했다. 이는 단순한 영화사가 아니라, 감독 중심의 창의적 콘텐츠 제작 플랫폼을 지향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또한 애니메이션, 드라마,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대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바꾸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스필버그의 진짜 힘은 ‘시대’를 읽는 눈이다.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는 단순히 '영화 잘 만드는 감독'이 아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고, 상처를 보듬고,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 창조자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인간의 역사, 상상력의 진화, 윤리적 고민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활동 중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감정이 있고, 도전이 있고, 물음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망이 있다.